북한산 836.5m

암봉과 성벽을 넘나드는 코스

북한산 의상봉능선

북한산 칼바위능선

백운대에서 본 노적봉

숨은벽 능선

코스:평창동-대남문-위문-북한산정상-우이동

북한산이 명산이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필자는 그러나 이 산을 10여년 이상 오르지 않았다. 도봉산은 매주 오르면서도 북한산을 일부러 멀리한 데는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궂이 들자면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이유같지도 않은 이유에서였다.
4월 15일 평창동 매표소를 지나면서 협곡으로 바싹 다가선 산록이며 계곡 바닥에 활짝 핀 벚꽃이 곱다. 시야에 모두 드러나는 들판과는 달리 산곡의 벚꽃은 급경사 산록, 단애와 절벽이 나무 아래쪽으로 조금은 어두운 배경을 이루고 있어 꽃 한송이 한송이가 확연한 윤곽을 가지고 환히 비쳐온다. 매표소에서 5, 6분만 올라가면 보현봉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경관은 순식간에 동양화같은 풍치로 바뀐다. 협곡자체가 바위로 되어있고 가운데로 물이 흐르고 길은 개울 한쪽을 따라 나 있어서 소나무나 벚꽃나무가 들어온 공간을 제외하면 사실 더 이상의 여유도 없다.
조그마한 폭포도 보이는 협곡을 지나면 승가사로 올라가는 갈림길이다. 승가사가는 길은 개울을 건너 자그마한 지계곡으로 따라 올라가야 한다. 이곳을 지나가면 앞이 트이는가 싶을 때 올려다본 봉우리가 보현봉 남쪽 능선의 전위봉인데 만개한 벚꽃 위로 보니 톱닛발같은 첨봉이 하얀 꽃의 매스와 어울린다.
여기서 조금 올라가면 약수터가 나타난다. 약수터에서 물을 한잔 마시고 급경사를 6분쯤 올라가면 작은 고개마루턱이 된다. 왼쪽으로 능선봉이 있는데다가 개울쪽으로는 벼랑이 있어서 길은 이 작은 고개를 넘게 되어 있다. 특별히 고개랄 것도 없는 이곳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이 고개에서 계곡의 작은 돌출봉쪽으로 조금 올라오면 눈앞에 무릎이 탁 쳐질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경관이야 어떠하건 몸이나 건강해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 봉우리를 조금 올라가면 계곡을 내려다보는 전망대바위가 나온다. 이 바위에서의 전망이 좋다는 것이다. 내가 본 북한산 그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중의 하나라고 장담할 수 있다. 오른쪽에는 높이 솟은 보현봉, 왼쪽에는 높이 솟은 문수봉이 경쟁적으로 키를 재는데 한쪽은 산록위쪽으로 한참 시선을 주어야 암봉이 나오지만 문수봉쪽은 계곡아래에서부터 위까지가 전부 바위이다. 전망대바위도 계곡에서부터 치자면 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두 암봉만이 솟아있다면 그림은 결국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정면 눈높이에 무엇이 있기 때문에 그림은 완벽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대남문이다. 약 500미터 내지 6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대남문의 아치형 문루가 이 그림의 구심점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산에서는 500미터에서 1킬로 정도 떨어진 중경과 근경이 거리상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듯한데 이곳 대남문이 그정도거리를 상거하여 두 암봉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것이 너무도 시적이어서 감탄하지 않고는 배겨내기 어려울 정도다. 어쩌면 보석이 박힌듯 꼭 있어야 할 자리에 문루는 서서 서슬푸른 오랑캐군들의 자취가 사라진 지 수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어찌 그렇게도 요지를 아우르고 있는 듯한가? 사실 문루의 규모로 보아 거대한 암봉들이 치솟아 있는 평창동계곡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니랄 수 있다. 하지만 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본 문루와 문루의 아치형 문은 전혀 새로운 어떤 풍요한 세계를 명백하게 시사해주는 듯이 적당히 높은 곳에 위치하여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경삿길을 올라가면 주위의 암봉들은 차츰 높이가 낮아지고 두 봉우리만 남았을 때쯤 문루앞에 서게 된다. 대남문 주위에는 허물어진 성벽을 보수하는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마치 새로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정릉, 북한산 정상쪽으로 가려면 성벽으로 올라가야한다. 보현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성곽위에서 만나서 정릉쪽으로 향하게 된다. 성벽위 전망대는 정릉일대와 평창동 터널 앞 부근을 조망할 수 있다. 여기 또한 조망이 좋다. 서울시가지의 북쪽이 다 내려다 보이는 셈이다. 이후 성곽옆으로 난 길로 오르기와 내리기를 반복하며 대성문, 보국문, 대동문, 북한산 대피소등을 비교적 용이하게 지난 다음 북한산 암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용암문까지 온다. 성벽공사를 하고 있는 곳을 지나 용암문으로 다가서면서 약간 왼쪽으로 방향을 트는 지점에서 바라본 인수봉.
나는 인수봉의 아름다움이 가장 돋보이는 지점에 서 있었는데도 사진 두어장을 찍는 것으로 지나치고 말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서 인수봉의 아름다움을 보는 각도가 다를 순 있다. 그러나 그날 진달래 떨기 너머로 본 인수봉은 내가 본 인수봉의 모습가운데 가장 기억할만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것은 하늘을 받치는 기둥처럼 그리고 거의 육감적이라고 할만큼 매끈하고 볼륨감있게 거기 만경봉 뒤로 높직이 솟아올라 있는 것을 보고 인수봉의 변화있는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용암문을 지나면 망경봉으로 올라가는 길과 망경봉을 아래를 횡단, 위문으로 빠지는 길로 나뉜다.
이 지점에서 인수봉으로 다가가면서 진달래가 핀 봄날 이 성길을 걷은 맛은 특이하다. 진달래 꽃숲 뒤로 보이는 바위들의 현란한 잔치, 마치 무수한 암봉들이 경쟁하듯 하늘을 찌르는 장면은 북한산을 찾는이들이라면 항상 보는 광경일 것이다. 하지만 오랜 만에 보는 나에게 그것은 북한산만이 가진 남성적인 경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위지대를 돌아올라가면 안부가 나오고 한쪽은 노적봉으로 올라가는 급경사다. 평창동-정릉을 지나면서 북한산 뒤쪽의 경관을 주도하고 있는 노적봉을 보면 서쪽으로 미끈하게 뻗어내리는 대슬랩은 위험스러워 보인다기 보다는 장쾌하고 젼율적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이 바위를 보는 것 만으로도 이 코스를 종주하는 맛은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는 느낌을 준다.

인수봉에 못지않은 대 암벽으로 대슬랩은 상상하기 어려운 높이로 북한산 서쪽 계곡 바닥으로 깊숙이 고도를 낮추고 있다. 대사면을 드러내고 있는 압도적인 봉우리가 노적봉이다. 안부에서 노적봉으로 올라가는 방법은 특별한 방법은 아니다. 록클라이밍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쨌든 주의하여 노적봉정상에 올라가면 북한산-위문-망경봉 능선이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망경대암릉을 타고있는 클라이머들이 뛰어내리기가 조금 어려운 구간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 꿈속인양 멀리 보인다.망경대암릉의 서쪽은 대슬랩을 이루고 있고 내려오는 길도 쉽지는 않을 듯 보인다.
그러나 그런 것을 떠나서 백운대, 인수봉, 망경대까지의 암릉과 세 봉우리를 하늘로 밀어올리는 듯한 암벽과 슬랩의 화려한 다이너미즘은 가히 경이적이다. 엄청난 힘과 부피앞에 말을 잊을 정도로 우람하고 호방한 바위경관이다. 이 정도의 감동은 설악산 천불동계곡 천당폭포 아래쪽 협곡이나 울산바위, 공룡능선의 일부, 덕항산 환선굴 위쪽 계곡, 두타산 용추폭포부근, 월출산 장군봉을 내려다보는 안부에서나 느낄 수 있을 만큼 강도 높은 것이다.
이곳 경관에서 느껴지는 몇 가지 요소를 분석하면, 첫번째는 백운대를 솟구친 힘이 옆구리로 느껴질만큼 강력하다는 점이다. 이 힘은 만경대와의 사이에 깊은 협곡을 만들고 그 협곡은 나는 새도 하강하려면 주의해야 할만큼 가파른 염초봉과 노적봉 사이의 협곡을 빠져나간다.
두번째는 북한산 백운대가 836.5미터, 노적봉이 716미터, 만경대가 799.5미터이므로 노적봉 정상에서 북한산쪽으로는 130미터, 만경대 쪽으로는 90미터에 가까운 암벽을 앞두거나 옆으로 두게 된다. 노적봉은 그런 점에서 근경의 바위를 조망하고 북한산-보현봉능선을 발자국 떨어져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최적의 전망대다. 앞을 보면 그렇고 뒤를 돌아보면 천길 아래쪽이 아찔한 높이아래의 계곡바닥이다. 노적봉 뒤로 보이는 계곡바닥은 300미터대이므로 대남문에서 바라보이는 노적봉 대슬랩은 하단부의 숲까지 포함하여 그 높이가 300미터이상이나 된다는 얘기가 된다. 이런 점에서 노적봉 전망의 의미는 크다.
노적봉이 먼저 보인다는 측면을 감안해야 되겠지만 이 지점에서 보이는 북한산 산괴 표면의 3분의 1을 노적봉이 차지하고 있다. 바위들의 축제앞에서 인간의 왜소함을 잠깐 잊고 자연의 호연지기를 받아들이게 된다.
노적봉을 내려와 쇠난간에 의지하여 암벽아래 벼랑위쪽 길을 따라 올라가면 위문이다. 위문 조금 위쪽에서 만경대 아래쪽 급사면과 노적봉, 그뒤로 보이는 보현봉을 그 지점 바로앞의 기암까지 넣어 북한산성일대 조망을 바라볼때 느끼는 감동은 춤추는 바위들의 산 북한산의 진면목 중 하나를 즐기는 것에 다름 아니다. 조망이라는 것은 무턱대고 높다고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물론 정상의 조망이 가장 시원하다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산에 따라선 정상에 가면 원경만 보이고 근경과 중경이 없어 오히려 싱거운 곳도 있다.
백운대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백운대에 올라서면 맨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인수봉이지만 백운대에서 염초봉-원효봉-원효봉 암릉으로 이어지는 대암릉과 백운대-인수봉 사이의 작은 암봉에서 시작되는 숨은벽능선의 파노라마이다. 두 암릉이 굼틀대며 서쪽으로 내려가는 모양은 너무도 역동적이어서 가히 일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망은 기껏해야 중경, 근경일 뿐이고 실제로 암릉을 타면서 경험하는 다양한 각도에서의 조망은 암벽을 타는 사람들의 것일 수밖에 없다. 백운대에서 위문을 거쳐 내려오면 백운산장(백운대피소)가 있고 쇠사다리를 내려가면 인수봉 아래쪽이다. 요즘은 깔딱고개로 갈 수 없고 인수봉 아래로 한참 내려가 오른쪽으로 개울을 건너 하루재를 넘어야 한다.


1998.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