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산은 충청북도 보은군 마로면에 있는 산이다. 속리산 남쪽에서 백두대간에 바싹 붙어있다. 이산의 높이는 900미트에 못미치지만 그 기상은 자못 당당하고 그 능선은 상당히 험하다.

경관은 높은 단애와 벼랑에 선 소나무숲으로 특징지울 수가 있는데 그로 하여 운치는 그윽하고 암봉은 빼어난 곳이 더러 있다. 초가을 벼랑위에 서서 단애끝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쑥부쟁이를 바라보면서 단애아래를 보면 구병산은 오직 속리산의 명성에 가려져 있을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구병산을 찾는 사람은 적은 편이지만 호젓함을 산행조건으로 치는 사람들에게는 안성마춤의 산이라 할 수 있다.

876.5m

서울에서 구병산으로 가는 길은 속리산으로 가는 길과 동일하다. 일단 속리산에 이른 뒤 경북 상주군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상주쪽으로 난 길을 가다가 속리산 뒤쪽인 화북면으로 가면 문장대, 천황봉으로도 올라갈 수 있다. 산이 주는 인상은 어느 방향으로 올랐느냐, 몇번이나 올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새벽에 집을 나와 고속도로를 달려오며 기왕의 구병산 산행의 인상을 기억하면서 오늘의 산행이 가져올 즐거움의 내용에 대해 이모 저모로 가늠하였다. 구병산에 처음 올랐던 것은 몇 년전 여름 아내와 함께였다.백두대간 중 형제봉과 천황봉능선이 감싸주는 내속리면 산골의 아름다운 호수 삼가저수지 끝에 있는 동네(구병리 느진목이)에서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동네는 입구에 소나무숲이 있어서 마치 신선들이 사는 동네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던 기억이 난다. 소나무 그늘이 좋아 떡본 김에 제사지내는 심경으로 한두시간을 노닥거리기까지 했던 것이다.삼가저수지 아래쪽 외속리면 계곡변 도로도 경관이 무척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러나 구병산은 전면(남쪽이 기걸한 반면 후면은 펑퍼짐한데다 완만하고 전원적인 인상을 더 진하게 풍긴다. 그래서 북쪽에서 올랐을 경우 정상에서 느끼는 감회는 더욱 더 극적일 수밖에 없다. 오늘은 아침에 안개가 끼여 있어 적암에 도착 했을 때는 산이라고는 부근의 독립봉으로 25번도로 가에 가까이 나앉은 시루봉의 암봉만이 우유빛 허공을 찌르고 있을 뿐이었다. 보은에서 37번 도로로 내려가다가 25번 도로로 상주로 가는 들어서서 구병산 쪽을 바라보았을 땐 구병산은 운무가 서려있어 산자락밖에 보이는 것이 없다. 구병산의 아름다움은 도로에서 금방 눈에 뜨이는 그 오밀조밀한 스카이라인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안개가 끼인 날의 구병산산행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 될 것이다. 아침안개 때문에 구병산의 기봉, 괴석면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주능선에 올랐을 때 구병산의 능선은 뜻밖의 암릉으로 다가왔다.그때의 인상은 놀라움 그것이었다.
.높이876.5m

.산행시간: 4-5시간정도
.위험구간 여러군데 있음(노약자는 안전한 길로)
.큰 봉우리 4개-작은 봉우리 3-4개
.능선에 푸른 소나무숲
.동네에서 바라보면 멋진 원경
.단애로 점철된 산복은 멀리서 보면 아홉 병풍처럼 보임
.백두대간이 가까우며 속리산이 근접해있다.

적암이라는 동네는 중농이상의 농가들이 구병산으로 들어가는 길과 개울가에 어엿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명산 아래 피폐한 농촌 없다는 내나름의 정의에 부합되었다. 아홉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져있는 구병산은 겨울엔 천혜의 방풍벽 역할을 해줄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겨울에 따뜻하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마로면 들녁은 산에 둘러싸여있는 골짜기의 비좁은 평야지대이지만 비옥해보이는 것은 상대적으로 구병산의 준험한 산세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동네를 지나 골짜기로 들어가면 조그마한 개천이 협곡사이로 나있다. 이 개천은 동네의 식수원이기도 하다. 안개낀 이른 아침의 풀섶은 무성한데다가 안개비와 이슬방울을 잔뜩 매달고 있어 사람이 지나가면 금방 옷을 젖게 만든다. 숲과 풀섶은 짙어 녹색의 어둠처럼 음침하다. 마침 들려오는 푸닥거리소리에 움찔 놀란다. 잡목과 웃자란 풀섭반은 가려져 한발자국만 벗어나면 길조차 금방 잃어버릴 지경이다. 그러나 봄철과는 달리 숲에서, 풀밭에서 나오는 냄새는 아침결의 습기를 타고 진하게 콧속을 파고든다. 장님이 그 냄새를 맡는다면 가을이 왔다고 할 것 같다. 취수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조금 올라가면 갈림길이 나타난다. 왼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조금 넓어 보인다. 이 길은 853봉과 구병산 정상 사이에서 내려오는 길이다. 그러나 구병산을 다 타려면 오른쪽 길로 계속 올라가다가 왼쪽 능선으로 붙어야 한다. 소나무가 드문드문 보이고 건너편 산등성이에 대각선으로 세줄의 붉은 색 나는 암릉이 녹색의 캔버스위에다 줄을 휙 그어놓은 것 같다.
능선급경사를 조금 올라가면 숲을 내려다보는 전망대가 두어군데 보인다. 골짜기의 수해가 내려다보이고 동네입구와 안개구름 아래에서도 하얗게 빛나는 위성통신의 거대한 파라볼라 안테나가 보인다. 안개가 산등성이를 뒤덮고 있어서 이곳계곡의 운취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조금전 산사면에서의 바위 줄무늬같은 낮은 암릉뿐이다. 계곡으로 치불어오는 바람은 습기차기는 하지만 신선하다. 습기찬 바람일수록 숲에선 더 시원하다. 소나무숲속을 올라가면 바위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곧이어 전망대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비로소 속리산연봉을 볼 수 있다. 비로봉 아래 형성된 깊은 산골 삼가면 일대의 골짜기와 좁은 경작지대가 내려다보인다. 전망대는 널찍한 너럭바위로 되어 있어서 구병산의 동쪽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지금 올라온 골짜기를 가득채우며 능선을 올라온 안개가 능선 날등을 사이에 두고 허공으로 치솟으며 스러지고 있다. 능선반대쪽은 안개가 거의 없다. 안개는 남쪽의 계곡과 능선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월악산 만수봉능선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경관은 당연히 촬영대상이 된다. 푸른능선을 중심으로 한쪽은 흰색 한쪽은 진한 녹음, 이런 대조를 만들어내는 안개는 능선 상공에서 재주를 부리기 마련이다. 소나무숲이 울창한 능선을 통과하면 853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안개가 비껴가고 있는 봉우리는 한쪽이 암벽, 한쪽은 소나무숲이다. 서서히 얼굴을 쓰다듬듯 봉우리를 스치는 안개는 처음에는 느리게 움직이다가 차츰 속도가 빨라지면서 시야를 가려버린다. 거대한 암봉은 순간 시야에서 사라지고 만다.
이 첫번째봉우리를 올라가려면 하나의 난관을 통과해야한다. 그것은 준봉의 정상을 위해 마련된 통과의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노약자나 여성들은 안전한 길로 가라는 표지판이 두번씩이나 나타나는 것을 보면 위험한 코스임이 분명한 모양이다. 구병산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데 안개가 걷히는 틈사이로 남으로는 아홉병풍으로 보이는 높은 단애로 형성된 봉우리들이 멀리 보은-상주가도에 서서 지켜보는 보이지 않는 사령관을 향해 줄지어 서있는 장병들을 연상시킨다. 안개가 끼였다가 걷혔다가 하는 과정속이라면 그 장관의 효과는 두배나 강열해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장관을 연출하는 구병산은 속리산의 외산격으로 비로봉 남쪽 멀리에 길게 솟아 나름대로 동진하다가 봉황산을 지나 흐름이 올곧지 못한 채 맥이 빠졌다가 다시 솟구친 백두대간을 형제봉 바로 남쪽 삼형제바위에서 만나게 된다.
853봉으로 올라가는 암릉은 그 길이는 비록 몇 미터에 지나지 않지만 좌우로 낭떠러지를 이루어 위험한 곳으로 초보자는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암릉을 지난 평탄한 능선에서 853봉과 그 일대를 내려다보면 장관을 이룬 대단애와 단애아래의 수해, 적암리로 뻗쳐나가는 능선과 그 아래 골짜기가 한 눈에 바라 보인다. 정상에 소나무 숲을 이고 있는 숲발치의 대석면엔 시름인양 안개자락이 오락가락한다. 안개는 오전이 다가기전에 흩어지고 푸른하늘을 보여주련만 오늘은 좀 끈질기다.
안개가 잠시 뜸한 사이로 보이는 구름의 모양은 하얀 솜뭉치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적운이다. 얼마든지 적란운으로 발달할 수 있는 그런 잠재력은 오늘도 소나기가 올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853봉 아래 숲속에 치솟아 있는 큰바위위의 작은 그림같은 소나무가 안개에 휘말리고 있다. 그 위로는 다시 암벽이 솟구치고 그위로 노송숲이 우거진 단애끝이다. 안개란 것은 단애와 소나무를 만나면 평범한 경관도 비범하게 보이게 한다. 그런데 이일대는 구병산의 백미를 이루는 경관지대여서 안개가 단애끝에서 조화를 부리면 가슴은 홀로 보물섬에 상륙한 듯한 뿌듯한 희열에 휩싸인다. 그러한 안개골짜기와 단애를 내려다보면 신선이 된듯한 기분이 되는 것은 그 산의 정상에 서려고 무수한 난관을 극복해온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행복일 것이다. 신선이 된 기분이란 그런 것이라고 할까? 세속을 초탈하여 자연의 품에 안기되 가장 화려하고 장엄한 자연의 품에 안기게 되는 순간이 신선이 되는 기분을 느끼는 적절한 시각이라면 구병산 853봉의 아침나절 몇겹 병풍자락이 기둥처럼 솟구친 구병산 853봉 주위에 운무가 휘날리던 그날 그 시간이 그러했다.
산에서 언제나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봉우리는 3면이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로봉 방향인 외속리면 구병리(산 남쪽은 마로면이다)쪽으로 숲이 형성되어 삼가저수지옆의 경작지와 마을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봉우리는 남쪽 단애아래로 막혔던 가슴이 툭 트이는듯한 멋진 조망을 제공한다.
853봉에서 구병산 정상은 지호지간일 정도로 가깝다. 853봉에서 안부로 내려서는 길은 암벽사이로 난 급경사길로 안부에 솟은 작은 봉우리를 비롯, 주봉과 삼가저수지일대의 조망이 좋은 아름다운 곳이다. 안부로 내려서자 능선을 오락가락 하던 안개들이 갑자기 걷히고 능선들이 제모습을 드러낸다. 그때부터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853봉을 돌아보는 안부위의 작은 봉우리에서 853봉과 그 뒤의 암봉과 그 암봉위의 작은 소나무를 당겨 나란히 세워 촬영을 하는데 빗방울이 카메라를 때리기 시작한다. 오늘도 소나기다. 지난주 어라연에서의 엄청난 소나기가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