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냉골-금오산-용장사-칠불암-고위산-천룡사-틈수골(산행, 문화재탐방 곁들인 멋진 코스)

화보:*석탑 그리고 칠불암 석불들


사진: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용장사 삼층석탑. 앞에 고위산 암릉이 싱그럽다

*냉골
*용장사 삼층석탑
*칠불암
*지도
*남산의 모습과 능선에 아스라히 보이는 용장사탑의 모습-사진안의 화살표끝
*신선암의 마애여래좌상
*석탑 그리고 칠불암 석불들

냉골

남산은 그 계곡에 아름다운 조각들이 없더라도 평범한 야산은 아니었다. 군데군데 멋진 바위들, 깎아지른 단애들이 있고 계곡은 깊었으며 남북으로 뻗은 금오산-고위산 능선은 하루 등산코스로서도 손색이 없는 거리와 높이며 멋진 전망대와 암릉을 갖추고 있는 일급 등산 코스였다. 남산일대에 석불, 마애불, 선각불이 들어서서 사철 향화가 끊이지 않는 것은 원천적으로 조상, 부조, 선각을 베풀 바위가 있어야 한다. 냉골 위쪽 상사바위 부근처럼 암릉이 등걸을 일으켜 세우고 있는 곳이 적지 않으며 바위가 여기저기 돌출하거나 깊은 석곡을 형성하고 돌출한 바위가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어 적당한 바위를 찾아 부처를 새기기가 아주 쉬운 산이 남산이다.
용장사 삼층석탑이 있는 바위부근에서 남쪽을 조망하면 쌍봉 능선과 고위산 암릉과 반 암봉골산은 꼭 한 번 올라가보고 싶은 아기자기한 바위지대와 전망좋은 능선이었다. 고위산 백운재부근에서는 산림이 울창하여 경주가 아닌 강원도 어느 구석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경주남산에 오면 골짜기마다 산재한 천년전의 문화적인 향기를 냄새맡고 싶어짐을 어쩌지 못한다.
산행을 입구에 삼릉(아달라왕등 세왕의 무덤)이 있는 냉골에서 시작한 것은 냉골에 6가지가 넘는 불상이 있고 금오산을 거쳐 고위산으로 가는 산행코스는 능선이 꽤 길어 (10킬로를 넘는다) 산행하기에도 적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냉골은 그동안의 가뭄으로 골짜기 계류가 거의 말라 있었지만 소나무가 많은 화강암 계곡은 맑 은 물이 흐르기만 하면 가경이 될 것 같았다. 불상을 새길만한 암벽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계곡에 는 분향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불상이 있으면 그 앞엔 예외없이 촛불상자가 놓여 있었고 부근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으며 일대를 청소하는 빗자루 한두개가 근처에 보였다. 짐작으로는 불상 마다 임자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불상 가운데는 복전함이 있는 곳도 있었기에 그런 느낌이 더 강열해졌다. 촛불상자는 촛불을 켜고 유리문을 닫으면 바람이 불고 비가 와도 촛불이 꺼지는 일이 없도록 만들어진 작지 않은 알루미늄 박스이다. 밀폐된 상자가 아니므로 불이 꺼질 염려는 없다. 풍우가 대작하는 그믐날 밤에 여기저기 불이 켜져 불상이 어둠속에서 번쩍이는 계곡을 상상해보면 이곳이 얼마나 특이한 골짜기인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이 골짜기에는 소나무가 많다. 송림속에서 처음 마주치는 불상은 목없는 불상이다. 의상의 정교한 돋을 새김과 안정된 좌정에서 풍겨오는 그 무엇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불상이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조금 올라간 언덕받이에 관음상부조가 있다. 비스듬한 돌기둥에 새겨진 관음의 얼굴에 석양빛이 물들어 있다. 관음상은 부드럽고 인자하다. 관음상을 보고 내려와 다시 골짜기를 조금 올라가면 왼쪽 언덕받이에 높이 4미터 정도의 바위단애가 있고 바위앞에는 조금 넓은 공터가 있어서 바위단애를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주위는 허리 꼬부라진 소나무들이 마치 바위에 새겨진 6마애불을 시립하고 있는 듯하고 바람이라도 불면 은은한 솔바람 소리가 난다. 이 여섯마애불은 이 냉골계곡의 부처상들 중 가장 예술성이 높은 불상들로 볼 수 있을 듯했다. 대부분의 부처상들이 단독불인데 비해 6불이 함께 새겨져 있는 데 모두가 연관성을 가지고 있어서 물씬 풍기는 분위기가 타처의 불상과는 다른 데가 있다. 바위 표면은 매끄럽지 못하며 왼쪽 3불과 오른쪽 3불은 모서리가 있어서 한 벽면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불상을 새긴 손끝은 원래부터 있던 바위의 균열과 미세한 절리마저 이미지를 표현하기위한 선의 일부로 사용하고 있음이 엿보여 주어진 재료-마뜨리에-를 이용하여 자기세계를 구현하는 안목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입체조각보다도 마애기술이 기술적 난이도에서는 얕은 수준일지는 몰라도 의미의 함축성에서는 뛰어나다는 것이 이 불상들이 준 인상이었다.
6불상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얕은 언덕받이에 석가여래 좌상이라는 불상이 하나 송림속 연화대좌에 앉아 있다. 마애불이 아닌 완성된 조각으로서의 불상이다. 그러나 불상의 코를 갈아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을 믿어온 우리네 부녀자들의 아들선호의 전통이 이 여래상의 코도 망가뜨려 놓았다. 없어진 코를 시멘트로 엉성하게 붙여놓은 것이 불상의 인상을 결정적으로 훼손하여 아쉬움이 컸다.
이 불상에서 뒤로 돌아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여래좌상 마애불이 나타난다. 웅장한 면석에 새겨진 부처는 입술이 유난히 두툼한 것이 특징이다. 광배그림도 천상도를 닮은 듯 수학적인 것이어서 인상에 남는다. 이 불상앞에 왔을 때는 이미 해가 완전히 져서 어둠이 깔려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런데도 불상앞 공터를 정성스레 비로 쓸어내며 향불을 돌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 냉골은 초입에서부터 향이 타는 냄새로 가득하여 부처가 얼마나 많은가 짐작케 한다. 이러한 상태는 상선암에 이르기까지도 계속된다. 석가여래 마애불에서 내려와 급경사 암석지대를 올라가면 냉골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산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절위로 올라가서 금오산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은 일부 암릉으로 형성되어 있고 서북쪽으로 높은 단애를 이루어 전망이 좋다. 산아래서 올려다보이는 곳 언덕받이 단애에 또하나의 마애불상이 있다. 이 불상앞은 전망대가 될 정도로 조망이 좋은 곳이어서 눈에 띄는데 금오산에서 뻗어내리는 맞은편 능선과 그 아래 냉골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서라벌 옛땅은 남산의 동서쪽에 남북으로 긴 벨트대를 이룬 채 옥야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능선에 올라가면 동으로 멀리 높다란 토함산이 길게 누워있고 북동쪽 산자락 끝에서는 경주시가지도 보인다. 이런 위치라면 신라의 경주인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와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수 있는 손쉬운 산인데다 괴림팔괴란 말이 있듯이 기암, 괴석이 골마다 그득하기까지 하니 돌을 주무르는데 일가견이 있는 신라인들이 남산을 불상의 천국으로 만든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암자를 내려다 보는 예의 마애석가여래좌상에서 급경사를 조금 더 올라가면 안부가 되고 거기서는 동쪽 골짜기(큰늠비골)와 늠비골 저쪽 능선위에 세워진 전망대정자가 보인다. 뒤로는 토함연봉 사이의 들판이 내려다 보인다. 남으로 방향을 돌려 큰 바위아래로 난 암릉을 타면 절이 내려다보이고 조금 더 가면 큰 바위뒤쪽이 바라보이는 곳에 이르게 된다. 상사바위뒤에는 아랫부분에 감실같은 홈이 패여있고 그안에 소석불이 있었다고 되어 있으나 지금은 없다. 상사바위에서 금오산 정상까 지는 밋밋한 능선으로 되어 있으나 냉골쪽은 높은 벼랑으로 형성되어 있어 전망이 아주 좋다. 금오산 정상에 가까이 갈수록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매캐한 냄새였다. 산불이 난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천년고도 경주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산불은 금오산 서쪽 능선과 능선 남쪽에서 일어나 금오산 남쪽 사면을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다행히 불은 골짜기하나와 능선을 태우는 정도에서 진화되었다. 남산 전체가 타고 말았다면 경주의 경주다움은 크게 손상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귀중한 문화적 자산이라도 그 주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이득원이 되지 못할 때 부주의의 마녀는 등장하기 마련이다. 금오산 정상에서 내려와 사자봉으로 향한다. 이쪽은 남산을 횡단하는 큰 길이 나 있다. 금오산에서 고위산으로 가는 코스에서 보면 사자봉은 길에서 비껴나 있지만 부석과 마애여래좌상 등 몇 가지 유물이 있는 산이라 지나칠 수 없다. 능선에서 소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한참 내려가면 날아가다가 바위위에 얹혔다는 전설의 바위 부석이 작은 지능선 위의 바위위에 얹혀 있고 그 아래 조그마한 골짜기가 열리는 곳에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진 바위가 있다. 계곡을 가로질러 조금 내려가면 벼랑 사이로 조금 들어간 안쪽에 미완성조각불이 있다. 이 한적한 계곡의 이름없는 부처앞에도 향화는 불타오르고 있고, 낙엽이라도 불려오면 빗자루로 쓸어내는 보살님이 있다. 사자봉에서 용장사 삼층석탑과 용장사터로 가려면 이영재로 가는 큰길을 버리고 처음엔 평탄한 암릉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그러면 경사가 조금씩 급해지고 곧 시야가 트이면서 벼랑가에 서 있는 용장사 3층석탑(보물 186호)이 나타난다.

용장사 삼층석탑

탑이 하늘에 대한 동경과 기원의 상징이라면 용장사 3층석탑은 그러한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탑이다. 보통 탑은 평지위, 절마당에 세워져 있는데 비해 이 탑은 아름다운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벼랑끝에 세워져 있기 대때문이다. 탑의 전체높이는 4.5미터로 비교적으로 작은 규모의 탑이다. 탑이 인격체라면 용장골에서 보이는 이 탑은 분명히 벼랑가에서 계곡을 내려다보거나 고위산 자락인 쌍봉을 건너다보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이곳조망과 탑의 위치 때문에 신라인의 종교적 심성의 깊이에 대해 얼마간 충격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탑의 기단은 남산자체인 암반이다. 상층기단이 자연석 위에 세워져 있는 것이다.
탑이 아니더라도 용장골로 올라오는 산행이라면 이곳에서 머물며 골짜기풍경과 건너다보이는 고위산 자락의 반 슬랩지대 겸 암릉을 보며 시원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 탑 주위엔 소나무가 있어서 그런 분위기를 돋궈준다. 삼층석탑에서 바위사이 길로 내려가면 절벽아래에 암벽에 여래좌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전체적으로 꽉 짜인 균형미가 느껴지는 마애여래이다. 인자로운 미소가 보는 사람을 편아하게 해 주면서도 그속에 엄격함도 담고 있는 상호에 긴장감이 느껴지는데 선의 흐름은 상당히 사실적이다. 높이는 1.14미터이며 8세기불상으로 감정되고 있다. 보물 913호이다.
마애불 앞에는 둥글게 조성된 삼층석탑형 대좌위에 좌불상이 안치되어 특이한 용장사터 석불좌상이있다. 이 석불은 목이 없고 몸체만 남아 있다. 결가부좌한 모습의 몸체는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사실적인 형태로 조각되어있다. 몸체, 옷의 주름등 가사의 표현이 자연스럽다. 전체높이 4.56미터.
용장사터 석불좌상(보물 187호)을 보고 다시 암릉위로 올라와 넓은 도로를 통과한 뒤 이영재로 향한다. 고위산 능선으로 올라서면서 용장사 삼층석탑 쪽을 바라보니 멀리서도 벼랑위에 서 있는 탑의 모습이 또렷하다. 이 탑의 존재가 이 용장골과 고위산 북쪽 산록 일대를 위압하고 있는 느낌이다. 냉골로 들어와 금오산에 오른 다음 사자봉 아래까지 내려갔다가 고위산 쪽으로 오면서 용장사 3층석탑을 보고 다시 올라와 고위산으로 오는데는 거리도 꽤 멀고 볼 것도 많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미 오후가 되어가고 있었다. 5,6시간이 지난 것이다. 그런데도 고위산으로 간 것은 칠불암 지대의 마애여래좌상과 칠불암 불상군을 보기 위해서였다. 고위산쪽은 사람들이 적어 호젓한 산길이었다. 송림도 빽빽하고 공기도 좋아 산행하기에 안성마춤이었다.
칠불암이 가까워오자 능선경치가 확 바뀌는 기분이다. 암곡, 암릉이 많이 보이고 내려다보이는 계곡도 수려하다. 칠불암은 남산 모퉁이 가장 외진 곳에 떨어져 있어 사람들이 찾아오기에도 불편하여 항상 조용한 느낌을 주는 듯하다. 봉우리를 내려서면 암벽지대가 나오는데 절벽사이로 난 길(칠불암으로 내려가는 길이기도하다)을 따라 가면 신선암이란 큰 바위가 있고 그 아래는 아찔하게 높은 단애이다. 이 신선암 바위의 동쪽 약간 경사진 한면에 새겨진 불상이 신선암 마애보살상이다. 이 암벽과 벼랑 주위의 풍경은 조망도 좋고 바위들도 수려하여 경관이 빼어난 곳인데 여기에 마애보살상이 새겨져있어서 경관과 조화를 이룬다. 용장사 3층석탑이 그랬듯이.
신선암 아래 조금 기울어진 면석에 얕은 감실을 파고 불상을 부조했는데 옆에서 신선암 바위, 마애불, 절벽길, 그 아래단애, 원경과 함께 보면 멀리 암릉들이 중첩되어 보이는 시원한 조망을 가부좌한 불상이 사바세계를 내려다보고 있는듯이 내려다보고 있는 독특한 위치와 형상이다. 대좌가 구름무늬를 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위치에서 볼 때 마치 천상에서 보는 듯한 시각을 느끼게 하기에 족하다. 자비에 넘친 상호로 기울어진 몸체를 앞으로 숙인 듯한 자세가 더욱 그렇다. 전체적으로 명상에 잠긴 근엄한 얼굴은 풍만한 편이고 머리에 쓰고 있는 보관은 화려하여 감실을 구획하는 선과 어울린다. 양감이 있고 세부표현이 치밀한 점은 불상의 연대를 통일신라후기 양식에 가까운 것으로 보게 한다. 이런 결정적인 장소에 위치에 걸맞는 불상을 천상의 부처처럼 양각하여 걸작을 만들게 한 안목과 의장은 절벽아래 칠불암의 사각바위 마애불을 포함, 대단한 것으로 100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공감을 자아내게 하고있다.
마애불 앞의 공간은 비좁다. 공간 옆으로는 깎아지른 단애이다. 절벽 위의 좁은 길을 조심해서 지나면 칠불암으로 내려가는 바위사이의 길이 가파르다. 칠불암에서 보면 신선암은 그 아래 석면에 마애불이 있건 없건 아름다운 암봉이다. 칠불암 부근은 노송이 무성하여 암봉과 함께 절경을 형성한다.
전체적으로 보아 경주 남산에서 이곳이 가장 짜임새 있고 옹골찬 느낌을 주는 아늑한 부처님 나라라는 느낌을 주었다. 냉골은 사실 좀 산만하여 구심점이 없고 유물도 이곳 저곳에 산재하여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던 데 반해, 칠불암은 암봉, 신선암, 칠불암 마애석불이 거의 직선상에 놓여 통일된 인상을 줄 뿐 아니라 마애불을 포함, 모든 부처상이 일정 수준 이상의 유연하면서 사실적인 표현기술을 갖춘 작품이란 점과 이들 석불들이 대체로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 이곳을 주목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칠불암 마애석불

신선암을 지나 급경사를 내려가면 칠불암 마애석불이다. 칠불암은 윤곽이 반원형인 큰 바위에 새겨진 삼존불이 병풍처럼 앞에 펼쳐져 있고 그 앞에 높이가 그 보다 낮은 사각바위 4면에 4개의 석불을 조각해 놓은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의장은 특이하여 바위의 자연적인 포치를 잘 이용하여 석불을 배치한 효과가 크다. 본존불이 새겨진 병풍바위의 반원형 윤곽과 4개석불이 조각된 4각바위의 윤곽은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된 듯한데 이러한 의장의 독창성을 산다면 칠불암을 국보급이라 평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칠불암 석불 앞에서는 평면불이 주는 효과와는 전혀 다른 마치 부처들의 소우주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본존불은 세련된 솜씨를 보이는 작품이다. 좌불의 높이는 약 2.7미터. 양감이 풍부한 얼굴, 유연한 어깨 및 팔의 곡선, 법의의 흐름도 몸체의 균형을 계산한 뒤의 안정을 추구한 것이어서 전체적인 인상이 부처의 자비로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부처상은 완전정면에서는 볼 수가 없다. 앞에 사면불상의 사각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4면불암석 뒤로 일부만 보이는 본존불은 그만큼 궁금증을 자아내는 효과를 보인다. 본존불의 협시불은 본존불의 어깨높이만큼 오는 규모가 작은 입상(실제로는 본존불의 앉은 키와 같아보인다)으로 코가 좀 부서졌다. 칠불암은 보물 200호이다. 4면석불은 삼존불에 비해 규모가 작아 자연 조각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준다. 혹시 삼존불을 위한 장식효과용 마애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남산일대의 마애석불전체를 생각하면 결코 뒤떨어지는 수준은 아니다. 4개마애불 전체가 원형의 광배를 가지고 있어서 본존불이 새겨진 반원형 바위 아웃라인과 4각바위의 직육면체와 서로 조응하고 있다. 병풍처럼 삼존불이 있고 본존불의 상당부분을 가리면서 그 앞에 4가바위의 사면에 각각 4좌의 마애불이 안치된데서 오는 이상한(?)효과가 무엇인지 탐구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이 코스에서 보아야 할 것
1.냉골의 6좌 석불(마애불등)
석불좌상
마애관음보살상
선각육존불
선각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
선각마애불
2.냉골주변의 경관
3.암릉에서의 조망
4.금오산 정상
5.사자봉 아래 마애여래좌상
6.부석
7.용장사 삼층석탑과 삼륜대석불좌상
8.신선암 마애불좌상
9.칠불암 삼존불과 사면석불
10.천룡사지와 사지에서 본 고위산
칠불암을 구경하고 다시 된비알로 올라오면서 뒤돌아보면 계곡이 범상한 계곡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능선은 암릉이며 산록의 상당부분까지 바위로 되어있다. 울창한 송림이 계곡아래를 뒤덮고 있다.
칠불암에서 능선으로 올라와 고위산을 옆으로 끼고 천룡사로 가는 길은 호젓하고 숲도 많아 산행이 즐거운 코스이지만 시간이 늦어져 마음이 급해진다. 이미 7시간 가까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는데 천룡사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였다. 천룡사는 지금은 폐사지만 남아있고 부근 동네 옆에 석탑만이 썰렁하니 서 있는 곳이다. 천룡사는 없지만 이 폐사지는 대단한 명당이었다. 고위산 능선이 완전한 암봉을 이루고 이 폐사지를 뒤에서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폐사지자체였다. 고위산 아래 중턱에 길이 400미터 넓이 350미터 정도의 테라스형 분지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곳이 천룡사지 라는 것이었다. 신라전성기에 당나라인이 이곳 절에 와서 만일 이곳이 떨어지면 신라가 망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명당이다. 이 테라스형 분지 아래로는 급경사를 160미터 가량 내려가야 동네가 나온다. 말하자면 이 테라스는 문자그대로 테라스처럼 공중에 떠있는 셈이었다. 이곳에 서면 마치 종묘 앞뜰에 선 것처럼 하늘이 아주 가깝다. 뒤에 고위산 암봉과 암릉, 그리고 주위의 대나무밭, 평탄한 고원분지가 어울어진 이곳에 대가람이 있었다고 상상하면 가슴이 뛰었다. 폐사지에서 내려가면서 보니 테라스 언저리에 억새밭이 우거져 황갈색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버스타는 내남면 틈수골까지만도 직선거리로 2.5킬로나 되었다. 거의 10시간이 걸린 참으로 흥미있는 산행, 아니 문화기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산행으로도 전혀 손색없는 산행이면서 문화유적을 볼 수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취감에 안겼다.

냉골로 들어가는 배리로 돌아와 삼릉 입구에 가까운 칼국수집에서 먹은 칼국수맛은 꿀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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