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의 하얀 계절, 덕유산이 들려주는 겨울의 시
하얀 세상 속으로 들어서는 순간, 덕유산의 겨울
겨울의 덕유산은 마치 한 폭의 동화책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나무 가지마다 눈꽃이 피어나고, 바람결에 쌓인 눈송이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천상의 정원을 이루지요. 특히 향적봉으로 오르는 길목은 ‘자연이 만들어낸 설경의 극치’라 불릴 만큼 아름답습니다. 그곳에 서면 세상이 조용히 숨을 멈춘 듯 고요하고, 발 아래 펼쳐진 하얀 능선은 사람의 마음까지 맑게 정화시킵니다. 산 아래에서부터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길도 색다른 경험인데, 창밖으로 지나가는 눈 덮인 숲과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빛은 겨울 산행의 낭만을 더해줍니다. 눈꽃이 만개한 나무들이 서로를 감싸듯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자연이 세상에 선물한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집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잠시 말없이 서 있다가, 자연의 순수한 숨결을 깊게 들이마십니다. 덕유산의 겨울은 그렇게 인간의 감성을 조용히 깨우며, “진짜 겨울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속삭이는 듯합니다.
무주의 겨울, 사람 사는 온기
무주의 겨울은 단순히 차가운 계절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안에는 사람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눈 덮인 골목길에서 장작을 패는 소리,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냄새, 그리고 시장 골목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장터국밥의 향기까지, 모두가 살아 있는 듯 따뜻하지요. 덕유산 자락에서 살아가는 무주 사람들에게 겨울은 자연과 더 가까워지는 시간입니다. 농사를 쉬는 동안 이들은 서로의 집을 오가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눈길을 걷다 마주친 이웃에게 “춥지요?” 하고 건네는 한마디 속에서 정이 오갑니다. 산촌 사람들의 삶은 고요하지만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함께 나누는 온기 속에서 그들은 겨울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요.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면 아이들은 마을 언덕에서 썰매를 타며 웃음을 터뜨리고, 어른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지난 겨울의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렇게 무주의 겨울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정겨운 시간입니다.
눈꽃축제와 덕유산의 또 다른 얼굴
덕유산의 눈꽃은 단순한 자연의 장관이 아니라, 무주 사람들에게는 삶의 일부이자 자부심입니다. 매년 겨울이면 ‘무주 덕유산 리조트’ 일대에서는 눈꽃축제가 열리며,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 고장을 찾습니다. 스키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 그 모두가 덕유산의 설경에 매료되지요. 축제 기간 동안 마을 사람들은 손님맞이에 분주합니다. 직접 담근 된장국이나 시골식 막걸리를 내어주며, 눈 덮인 풍경 속에서도 마음만은 따뜻한 환대를 보여줍니다. 산골에서 나고 자란 노인들은 “옛날엔 눈이 이렇게 내리면 며칠을 꼼짝 못했지”라며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아이들은 핸드폰보다 눈사람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버립니다. 덕유산 눈꽃축제는 단순한 지역행사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의 장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자연을 대하는 무주의 철학이 숨어 있습니다. “겨울은 힘든 계절이 아니라, 자연이 쉬어가는 시간이다.” 이 말은 덕유산 아래를 지키는 사람들의 오래된 믿음입니다.
산이 주는 깨달음, 겨울이 가르쳐주는 인내
덕유산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그 풍경에 반해 오르지만, 정상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 겨울 산행이란 단순한 여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대화’라는 것을 말이지요. 눈밭을 한 걸음씩 밟으며 걷는 동안 숨이 차오르고, 손끝이 시리지만 그 고요함 속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의 리듬에 맞춰갑니다. 눈길을 걷다 보면 마음속의 불필요한 소음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결국엔 “이 고요함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닿게 됩니다. 무주의 사람들은 이런 자연의 리듬을 삶의 지혜로 삼아 살아왔습니다. 계절이 바뀌면 삶의 속도도 달라지고, 눈이 오면 일손을 멈추듯, 그들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습니다. 덕유산의 눈꽃이 피고 지듯, 인생도 그렇게 순리에 맡기는 것이지요. 겨울의 덕유산은 단지 풍경이 아니라, 인간에게 ‘멈춤의 미학’을 가르쳐주는 스승과 같습니다.
하얀 겨울의 끝, 다시 봄을 준비하는 마음
겨울의 끝자락이 다가오면 덕유산의 눈꽃도 서서히 녹아내립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남는 것은 단순한 흔적이 아닙니다. 눈이 녹은 자리에는 봄을 맞을 새싹이 기다리고 있고, 마을 사람들은 다시 농기구를 손질하며 한 해의 시작을 준비합니다. 무주의 겨울은 그렇게 끝이 아니라, 다음 계절을 위한 쉼표입니다. 덕유산의 눈은 그 쉼표를 눈부시게 장식해줄 뿐이지요. 여행객이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든, 한 번이라도 덕유산의 겨울을 경험한 사람은 압니다. 그곳의 눈은 단순한 차가움이 아니라 ‘따뜻한 고요함’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힘을 얻습니다. 덕유산의 눈꽃과 무주의 겨울은 그렇게 사람들의 삶을 부드럽게 감싸며,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마음에도, 아직 따뜻한 겨울이 남아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