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산행이 가르쳐준 진짜 ‘정상’의 의미
산은 늘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정상에 오르는 길이 순탄할 것이라 믿었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돌풍과 안개 속에서 저는 산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발밑의 흙이 미끄럽게 변하고, 숨은 거칠어졌으며, 동료들의 얼굴엔 불안이 스며들었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산행의 ‘성공’이란 꼭 정상에 오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실패한 산행은 어쩌면 진정한 산행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오만을 낮추고, 자연의 크기를 느끼게 하는 그 경험은 겸손이라는 선물을 안겨줍니다. 정상에서의 환호보다, 내려오는 길의 침묵이 훨씬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을 그날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산행의 실패는 ‘멈춤’을 배우게 합니다. 우리는 종종 ‘끝까지 간다’는 말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는 끝까지 가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날씨가 악화되거나 체력이 한계에 다다를 때, 멈추는 용기를 내야만 합니다. 그 멈춤은 포기가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선택입니다. 인생도 그렇지 않습니까? 때로는 멈춰야 길이 보입니다. 산속에서 한 발짝 물러서 앉아 숨을 고를 때, 그제야 들리는 새소리와 바람의 숨결은 인생의 ‘쉼표’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려줍니다. 실패한 산행을 통해 저는 배웠습니다. 멈춘다는 것은 뒤로 가는 것이 아니라, 더 멀리 보기 위한 준비라는 것을요.
정상보다 값진 것은 ‘함께 내려오는 길’입니다. 산을 오를 땐 각자의 속도가 다르지만, 내려올 땐 서로를 기다리며 내려옵니다. 실패한 산행일수록 동행의 의미는 더 깊어집니다. 누군가는 넘어지고, 누군가는 손을 내밀어 줍니다. 그 과정 속에서 인간의 진심이 드러납니다. 성공의 순간보다 실패의 시간에 더 진정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이유입니다. 저는 그날, 서로를 의지하며 내려오는 길에서 ‘함께 있음’의 가치를 새삼 느꼈습니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정상에 오를 때보다, 함께 어려움을 겪을 때 진정한 관계가 단단해지는 법입니다. 산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가르침은 바로 이 ‘동행의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산은 늘 같은 자리에 있지만, 우리는 매번 달라집니다. 같은 산을 다시 찾아도 그날의 나, 그날의 하늘, 그날의 마음은 전혀 다릅니다. 실패한 산행이 남긴 후회는 시간이 지나면 성장의 밑거름이 됩니다. 다음번에 오를 때는 그날의 실수를 기억하며 더 준비된 마음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인생 또한 그렇습니다. 실패는 다시 오를 이유를 만들어 줍니다. 산은 우리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산의 품 안에서의 실패는 언제나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실패한 산행’이 아니라 ‘배운 산행’이라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리는 이유입니다.
결국, 산은 우리 마음의 거울입니다. 산행의 실패는 마음의 실패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이며,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자각입니다. 인생의 수많은 오르막길 속에서도 우리는 종종 넘어지고, 미끄러지며, 방향을 잃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산처럼 묵묵히 서 있는 ‘내면의 산’을 떠올려야 합니다. 실패를 통해 자신을 다듬고, 마음을 단단히 하는 과정이 바로 삶의 산행이니까요. 산은 늘 거기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 걸음을 내딛기를 기다리며, 실패조차 품어주는 그 넓은 품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