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지명에 담긴 사람들의 삶, 불암산 아래 이야기

서울 북쪽 끝자락에 우뚝 솟은 불암산은, 멀리서 보면 부드러운 능선이 마치 부처의 얼굴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산입니다. 하지만 이 산이 품은 이야기는 단순히 자연의 풍경에 그치지 않습니다. 불암산 아래 자리한 마을들—즉, 오늘의 공릉동, 상계동, 중계동 일대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수많은 이름을 바꾸며 살아온 역사 그 자체입니다. 이 글에서는 그 옛 지명들이 품은 뜻과, 지금 우리가 부르는 이름으로 바뀌기까지의 변화를 천천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불암산 아래, ‘하계리’와 ‘상계리’로 불리던 시절

불암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지금의 중계동과 상계동은, 예전에는 하나의 고을이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하계리(下溪里)’와 ‘상계리(上溪里)’라 불렸지요. ‘계(溪)’는 ‘시냇물’을 뜻합니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줄기가 마을을 감싸고, 그 곁에 사람들이 터를 잡으며 살던 곳이었습니다. ‘상계’는 물줄기의 윗쪽 마을, ‘하계’는 아랫쪽 마을을 의미했는데요, 단순하지만 당시 사람들의 생활감각이 그대로 담긴 이름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예부터 물이 풍부하고 농사에 유리하여, 서울 외곽임에도 생활이 비교적 안정된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여름이면 불암산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물소리가 들리고, 논과 밭이 끝없이 이어졌던 시절이 있었다지요. 지금의 아파트 숲을 상상하면 믿기 어렵지만, 그때의 상계·하계는 자연과 사람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작은 낙원이었습니다.

‘공릉동’의 유래 – 공신의 무덤이 있던 마을

불암산 서쪽으로 방향을 틀면 ‘공릉동’이 나옵니다. 이름에서 ‘릉(陵)’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는데요, 이는 ‘능(陵)’, 즉 왕이나 공신의 무덤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이곳에는 조선 초의 공신, 공양왕비 노씨의 능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공릉’은 바로 그 ‘공신의 능’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공릉동은 한때 경기도 구리시, 노원구, 중랑구에 걸친 지역으로 행정구역이 자주 바뀌며 그 명칭도 다양하게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은 오랫동안 ‘공릉’이라는 이름에 애착을 가져왔습니다. 조용하고 학문적인 분위기를 가진 마을이었는데,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불암산 자락에 논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지금의 서울과학기술대학교가 들어선 자리 또한 예전에는 들판이었지요. 세월이 흐르며 학교, 군부대, 연구소가 들어서면서 마을은 점점 교육과 과학의 중심지로 변모했습니다.

도시화의 물결, 이름이 바뀐 이유

1960~70년대 서울의 확장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불암산 아래 마을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농촌이던 이곳은 불과 수십 년 만에 도시의 품으로 편입되었지요. 상계동, 중계동, 공릉동이라는 행정동 이름은 이 도시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현대적 형태의 지명입니다. 예전의 ‘리(里)’가 ‘동(洞)’으로 바뀐 것은 농촌에서 도시로의 변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당시 정부는 급격히 늘어나는 서울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노원 신시가지 개발’을 추진했고, 불암산 아래의 옛 마을들은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돌담길과 초가 대신 콘크리트 아파트가 세워지고, 논밭이던 자리에 도로와 지하철이 놓였습니다. 이름은 남았지만,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여전히 ‘우리 동네는 불암산 아래’라 말합니다. 산은 변하지 않았고, 그 아래 마을의 정체성 또한 여전히 그 산과 함께 숨 쉬고 있으니까요.

불암산이 지켜본 세월의 흔적

불암산은 말없이 그 모든 변화를 지켜봤습니다. 고려 시대의 승려들이 이 산에 절을 세우고 수도하던 때도 있었고, 조선의 선비들이 산책하며 시를 읊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벌목과 군사시설 확장으로 숲이 훼손되기도 했지만, 주민들은 늘 이 산을 신령스럽게 여겼습니다.

특히 불암산 아래 마을 사람들에게 이 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삶의 일부였습니다. 여름이면 산 계곡에서 아이들이 물장구를 쳤고, 봄이면 산자락에 진달래를 따러 올랐습니다. 명절에는 산을 향해 절을 올리며 조상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던 전통도 이어졌습니다. 지금은 등산로와 전망대가 들어서고, 불암산 자락에는 노원구의 대표 휴식 공간인 불암산 힐링타운이 조성되어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산촌’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옛 이름이 남긴 메시지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계동’이나 ‘공릉동’이라는 행정명만 떠올리지만, 그 뿌리에는 ‘상계리’, ‘하계리’, ‘공릉리’ 같은 옛 이름이 살아 있습니다. 이 이름들은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던 시절의 상징입니다. ‘계(溪)’라는 글자에 담긴 물소리, ‘릉(陵)’이라는 글자에 깃든 경외심은 시대를 넘어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어쩌면 불암산 아래 마을의 지명 변화는 우리 사회 전체의 축소판일지도 모릅니다. 빠르게 변하는 도시 속에서도, 이름 하나하나에는 여전히 자연과 사람의 숨결이 남아 있으니까요. 그 이름들을 기억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땅 위에 서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행위입니다. 불암산의 그늘 아래, 이름이 바뀌어도 변치 않는 정체성의 뿌리가 여전히 단단하게 남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불암산 아래의 마을들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여러 번 이름을 바꿨지만, 그 본질은 늘 같았습니다. 물이 흐르고, 산이 숨 쉬고, 사람들이 삶을 일구던 그 터전—그게 바로 불암산이 지켜온 ‘마을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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