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숲길과 달의 절, 월정사에서 찾은 마음의 평화

1. 천년의 숨결이 머무는 오대산 월정사

강원도 평창 깊은 산중에 자리한 오대산 월정사는 한국 불교의 맥을 잇는 대표적인 고찰로, 천년의 세월을 품은 곳입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불법을 배우고 돌아와 세운 절로 전해지며, 그가 불교의 법맥을 지키고자 심은 신앙의 씨앗이 오늘날까지도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월정사라는 이름에는 달처럼 맑고 고요한 마음을 닦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달(月)’은 불교에서 지혜와 깨달음을 상징하고, ‘정(精)’은 순수한 정성을 뜻하지요. 즉, 마음의 혼탁을 비워내고 달빛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세상을 비추겠다는 자장율사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입니다. 월정사는 오대산의 중심 사찰로서, 신라부터 고려, 조선을 거쳐 오늘날까지도 수행과 예불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전쟁과 화재로 여러 차례 피해를 입었지만, 그때마다 다시 일어섰습니다. 마치 달이 구름에 가려도 다시 떠오르듯, 월정사의 법등도 결코 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2. 불교 예술의 정수, 팔각구층석탑의 우아함

월정사 경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국보 제48호인 ‘팔각구층석탑’입니다. 균형 잡힌 비례와 섬세한 조각이 조화를 이루며, 마치 달빛을 머금은 듯 고요하게 서 있습니다. 탑은 통일신라 시대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높이 약 15미터에 달하는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지요. 흰 돌로 쌓아 올린 탑신의 각 층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지만, 그 자태는 여전히 단아하고 고결합니다. 탑은 단순히 건축물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향하는 길’을 상징합니다. 아홉 층은 불교의 구단계 수행을 의미하고, 하늘로 향한 곧은 형태는 인간이 마음의 번뇌를 비워 진리로 나아가는 여정을 표현하지요. 특히 이 탑은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다고 전해져 순례객들이 가장 먼저 발걸음을 멈추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탑 앞에 서면 마치 시간이 느려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세속의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바람과 솔잎의 속삭임만이 들릴 뿐입니다.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불교가 말하는 ‘공(空)’의 경지를 조금은 느낄 수 있지요.

3. 월정사 전나무숲길, 마음을 씻는 길

월정사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상징은 바로 ‘전나무숲길’입니다. 총 길이 1km 남짓한 이 숲길은 천년 고찰로 들어가는 길목이자,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는 정화의 통로라 할 수 있습니다. 곧게 뻗은 전나무들이 양옆으로 줄지어 서 있고, 그 사이로 햇살이 부드럽게 쏟아집니다.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금빛 명상처럼, 걸음을 옮길수록 마음이 맑아지고 가벼워지는 기분이 듭니다. 숲길에는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어우러져 하나의 자연 교향곡을 이룹니다. 이 길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라 ‘명상의 길’입니다. 조선의 문인들도 이 숲길을 찾아와 시를 읊었고, 근대의 시인들도 월정사의 고요 속에서 삶의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어떤 이는 이 길을 걷다 보면 “내 안의 달이 비친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만큼 숲길은 자기 성찰의 공간이자, 번잡한 세상에서 벗어나 ‘본래의 나’를 만나는 길입니다. 전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은 마치 불법의 광명처럼 따스하고, 그 사이를 걷는 순간은 명상 그 자체입니다.

4. 월정사와 오대산이 전하는 수행의 철학

월정사는 단지 고즈넉한 절이 아닙니다. 오대산 전체가 하나의 수행처이며, 산과 절이 서로 호흡하듯 존재합니다. 오대산은 불교에서 ‘문수보살의 도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 오대산은 그의 깨달음이 깃든 곳이라 여겨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이곳을 찾는 이들은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마음의 순례자’입니다. 절 안에는 여전히 수행승들의 독경 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른 새벽 안개 속에서 들리는 목탁 소리는 세속의 혼란을 잊게 만듭니다. 월정사는 현대에도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내면의 평화를 찾는 시간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소음, 디지털의 피로, 인간관계의 복잡함 속에서 지친 이들이 이곳에 와서 숲과 절, 바람과 달빛 속에서 자신을 회복합니다. 불교의 ‘선(禪)’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조용한 순간 속에서 깨어나는 마음의 평온을 의미하지요. 오대산과 월정사는 그 깨달음의 문턱을 부드럽게 열어주는 곳입니다.

5. 고요 속의 울림, 월정사가 주는 메시지

월정사는 세월의 더께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고요함으로 사람들을 품습니다. 그 고요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모든 소리를 품은 깊은 평화입니다.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을 흔들 때, 그마저도 하나의 법문이 됩니다. ‘모든 것은 변하되, 그 안에 진리는 변치 않는다’는 불교의 진리를 몸소 보여주는 장소, 그것이 바로 월정사입니다. 여행객이든 수행자든, 누구든 이곳을 찾으면 저마다의 이유로 머물게 됩니다. 어떤 이는 역사 속 자장율사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또 어떤 이는 숲의 향기 속에서 잊고 지낸 자신을 마주합니다. 그렇게 월정사는 각자의 사연을 품고, 오늘도 묵묵히 달빛 아래 서 있습니다. 때로는 인간의 인생도 이 전나무처럼 곧게, 이 탑처럼 흔들림 없이 서야 하지 않을까요? 월정사는 말없이 그 답을 알려줍니다 — 마음이 잔잔할 때, 비로소 세상은 더 깊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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